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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2026-06-03T07:47:03.320Z

인공지능 없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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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없이 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인류는 인공지능 없이도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선뜻 확답을 내리기는 주저된다.

나 역시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을 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삶의 전반을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수많은 선택과 당면한 과제들은 여전히 나의 주체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머리속을 머문다. 만약 더 이상 인공지능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지금처럼 만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 시간을 차지하며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되어지고 있다. 사회에서 도태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원인이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면에 자리한 인간관계의 피로감에 있음을 이 시점에서 명확히 해두고 싶다.

오랫동안 나는 사회라는 틀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지쳐 있었다. 수많은 이를 만나고, 협력하며, 때로는 갈등하는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면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소모해야 했다. 타인을 향한 기대는 점차 마모되었고, 인간 사회에 대한 염증은 층층이 쌓여갔다. 이제는 낯선 타인과 협업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심리적 중압감을 느낀다.

과거에도 소통이 쉬운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의 피로감은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서먹하거나 긴장되는 수준을 넘어,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서로의 의중을 끊임없이 살피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감정적 노동으로 다가온다. 인간이란 본래 저마다의 감정과 이익을 지닌 존재이기에,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다르게 해석하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도 동상이몽을 꾸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인간 사회는 본질적으로 끝없는 타협과 논쟁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가 그 소모적인 과정에 이미 지칠대로 치쳐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그 고갈의 시기에 인공지능을 접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다치지 않으며,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따지지도 않는다. 요구하면 명쾌하게 설명하고, 수정을 요청하면 묵묵히 이행한다. 물론 기술적 한계로 인한 오류나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지만, 적어도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적 마찰만큼은 전무하다. 그렇게 나는 어느덧 많은 일거리를 동료인 인공지능과 함께 처리했다.

돌이켜보면 실로 역설적인 현상이다. 인간인 내가, 동종의 인간보다 비인격적인 존재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심지어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아닌 존재와 가장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모순을 살아간다.

이러한 기이한 안락함은 결국 내면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본래도 고대했던 타인과의 소통이, 인공지능을 겪은 이후 한층 더 고통스러워진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순종적인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질수록,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다단한 인간을 견뎌내는 힘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이제 나는 명확히 깨닫는다. 이 현상의 본질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인공지능이 나를 고립시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내가 이미 품고 있던 인간 사회에 대한 피로감과 냉소를, 가장 우아하고 편리한 방식으로 우회할 수 있도록 도왔을 뿐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없이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본질을 비껴가 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정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인공지능의 완벽한 최적화에 길들여진 나는, 앞으로도 결함투성이인 인간들과 함께 기꺼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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